[호남정맥과 생태] 차별없는 평등의 산, 무등산

2010년 6월 28일 | 회원소모임

[호남정맥과 생태] 차별없는 평등의 산, 무등산

1980년 5·18 광주민중항쟁 이후 ‘빛고을’ 광주는 혁명의 도시였고, 무등산은 광주의 상징이었다. 5·18영령들을 추모하며 망월동 묘지를 참배하던 사람들은 진분홍 철쭉이 물들던 무등산을 함께 올랐다. 무등산은 산세가 비교적 둥글고 부드러워서 경사도 비교적 완만하다. 이러한 이유로 무등산에 들면 모든 이를 품어않는 차별 없는 평등의 산임을 실감한다.

무등산(1,187m)은 호남정맥상에서 중간정도에 위치해 있는 산으로 장안산(1,237)과 백운산(1,215) 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호남정맥의 종산인 장안산과 백운산의 경우 각각 호남정맥의 양 끝단에 위치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거나, 사람들과 밀접히 연관된 산이 아닌 것이 현실이다. 반면 무등산의 경우 525km 길이의 호남정맥 중간정도에 위치하고 있으며, 150만명의 시민들이 살고 있는 광주광역시에 위치하고 있어 호남정맥 중심 산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무등산은 과거로부터 광주의 진산으로 산 이름도 광주광역시의 지명변화와 관련을 가진다. 백제시대 이전의 광주의 지명은 한자로 무진(武珍)이었는데, 이는 음과 뜻을 차용한 것이고 실제 발음되는 우리 이름은 ‘무들’ 또는 ‘물들’이라고 불렀을 것으로 추정한다. 무들은 ‘물이 많은 들판’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지명에 따라 무등산은 ‘무돌산’ ‘무당산’ ‘무진악’ 등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이러다가 고려시대에 지명이 광주로 바뀌면서 무등산의 이름도 처음 등장하며, 무등산 또는 무진악, 서석산이라 불리웠다. 결국, 무등산은 처음에는 ‘물이 많은 들판의 산’이라는 뜻에서 유래됐다고 할 수 있다.

무등산은 현재 30.23㎢의 면적이 광주광역시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는 광주광역시뿐만이 아니라 전라남도 담양군, 화순군에 걸쳐 위치한 매우 큰 산이다. 이처럼 높고 큰 무등산에는 1,345종의 식물종이 분포하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며, 동물상의 경우 멸종위기 1급인 수달과 구렁이, 멸종위기 2급인 삵, 맹꽁이, 원앙, 흰목물떼새, 말똥가리 등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생물다양성이 높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한편, 무등산은 인구 150만 이상의 대도시를 품고 있어 연간 220만명 이상의 시민이 이용하고 있다. 또한, 정상에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고, 고산지역에는 방송사와 통신사의 송신탑 등 각종 시설이 위치하고 있어 생태계를 심각하게 교란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외래귀화식물이 90여종 분포하고, 멸종위기종은 찾아볼 수 없는 등 그 동안 식생이 많이 훼손됐다. 또한, 일제시대의 남벌과 6·25때의 폭격 등으로 무등산생태계는 현대에 들어 더욱 수난을 당해왔다.

역사적으로 보면 광주광역시는 근대이전에는 크게 주목받는 도시가 아니었다. 전라도의 경우 전주와 나주, 남원이 중심도시를 형성하고 있었고 광주는 나주부 광주목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구한말인 1896년 전국을 8도에서 12도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전라도가 전라남북도로 나뉘고 전라남도의 관찰청을 광주에 둠으로써 본격적인 광주시대가 열렸다. 특히, 호남선 철도와 호남고속도로가 만들어지면서 더욱더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다.

구한말 전라남도의 중심지가 된 광주는 일제강점기에는 저항의 중심지가 되었다. 일제의 침략 기도에 맞서 싸운 한말 의병은 전국에서 3만8천5백여 명으로 추산됐으며, 이 중 46%인 1만7,500여 명이 전남에 집중돼 있었고, 광주와 무등산은 의병들의 중심지였다. 또한 1929년 광주학생운동, 5?18 광주민중항쟁 등 근 현대에 있어 광주는 저항과 민주주의의 중심으로 의절(義節)의 지역이다. 이처럼 광주와 호남인들의 의로운 정신은 호남정맥의 중봉인 무등산과 무관하지 않다.

이처럼 무등산이 역사와 문화, 환경 등 광주지역과 전라도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크기 때문에 무등산에 대한 호남인들의 관심도 자연스레 매우 높다. 무등산보전협의회 등 시민들의 활발한 무등산보전운동은 그 동안 무등산 정상부의 통신사와 방송사의 송신탑을 이전시키고, 무등산을 공유화하는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호남정맥의 중심 산이자 광주와 호남의 구심점 역할을 한 무등산이 현대에 들어 많은 수난을 당해왔고, 역사의 아픔과 모순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범시민이 나섰고 무등산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다. 머지않아 더욱 건강하게 되살아난 무등산이 더욱 넉넉해진 품으로 시민들을 안아주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한승우 전북녹색연합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