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과 역사] 역사의 회한이 교차하는 88올림픽 고속도로

2010년 5월 7일 | 회원소모임

[호남정맥과 역사] 88올림픽 고속도로

호남정맥 탐사를 하면서 이곳이 산줄기가 맞는가 하는 지역이 나온다. 야트막한 산과 들판, 도로가 연속되는 순창군 금과면과 곡성군 옥과면, 담양군 금성면과 무정면 등이 접하는 지역이다. 이곳의 산봉우리들은 해발 200~500m이며, 고개는 호남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과치재가 130m로 가장 낮다. 88고속도로가 지나가는 지역도 해발고도가 140여m로 낮은 고개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낮은 구릉을 이루고 있어 도로도 국도 24번, 13번, 15번, 고속국도 12번, 25번 등이 지나간다.

특히, 88고속도로는 야트막한 호남정맥 줄기를 3번이나 가로질러 정식으로 산행을 할 경우 고속도로를 3번 건너야 하는 구간이다. 그러나 짧은 구간을 여러 번 가로지르기 때문에 대부분의 정맥꾼들은 덕진봉(384m)을 지나 88고속도로를 건너지 않고 도로를 따라 걷다가 316.9m 봉으로 직접 오르고 316.9m봉을 내려서야 비로소 88고속도로를 건너는 경우가 많다.

[imgleft|333185_45518_5121.jpg|300| |0|1]88올림픽고속도로는 일명 ‘동서고속도로’로 불리기도 한다. 1980년 광주민중학살을 통해 집권한 전두환 정권이 경상도와 전라도의 동서간 지역화합을 꾀한다는 목적으로 건설한 도로로 역사의 회한과 애증이 교차하는 도로이다. 당초 계획은 군산-전주-대구-포항을 동서로 횡단하는 고속도로를 만들려고 했으나, ‘광주와 대구를 연결하는 도로를 일차적으로 만들어라’는 지시에 따라 현재의 광주-대구간 고속도로가 건설되었다고 한다. 고속도로 준공식때에는 8쌍의 영?호남 신랑신부 합동결혼식 이벤트를 벌이기도 하였다.

1981년 10월 16일 착공한 88고속도로는 전라남도 담양군을 기점으로 하여 대구광역시 달성군을 종점으로 하는 연장 175.3km의 왕복 2차선 고속도로로 1984년 6월 27일 준공하였다. 왕복2차선에 불과하고 중앙분리대조차 없는 고속도로인지라 제한 속도가 최고 80km에 불과하다. 당시 동서화합을 꾀하고 88올림픽의 유치를 홍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88올림픽고속도로는 100% 국내산 콘크리트를 이용하여 건설한 것으로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최근의 국도가 제한속도 시속90km까지 건설되고 대부분 4차선 이상인 점을 고려하면 88고속도로는 일반국도보다도 못하다는 불만이 많다. 여기에 일반적인 고속도로인줄 알고 통행료까지 지불하고 88고속도로를 타는 사람들은 과속과 중앙선을 넘나드는 추월을 자연스럽게 행한다. 이러한 환경으로 88고속도로는 교통사고 치사율이 30~40%로 다른 도로에 비해 3배정도 높아 죽음의 도로라는 악명까지 가지고 있다. 이처럼 이름뿐인 88고속도로를 일반국도로 낮추고 통행료도 받지 말자는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으나 도로공사의 조직이기주의로 성사되지는 못하였고, 지금은 4차선으로 고속도로 확장공사를 진행중에 있다.

88고속도로는 영호남의 동서화합을 명분으로 건설하였기 때문에 호남정맥은 물론 백두대간을 가로지른다. 백두대간의 사치재(500m)를 통과하는 88고속도로는 500m 고개를 터널이 아닌 지상도로로 통과하기 때문에 로드킬의 대명사로 야생동물의 무덤이 되고 있기도 하다. 지역감정을 부추기며 광주를 피로 물들였던 군사독재정권이 지역화합을 명분으로 88고속도로를 만들었지만 26년이 지난 현재 지역화합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고, 정치인들의 지역화합노력은 진정성이 있는지 믿기 어렵다. 진정한 지역화합은 도로 하나로 이루어 질 수 없음을 88고속도로가 증명하고 있고, 지역사랑을 지역이기주의로 왜곡시키는 보수정치인과 관료들이 있는 한 쉽게 없어질 것 같지 않다.

/한승우 전북녹색연합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