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과 역사] 산으로 간 사람들, 빨치산

2010년 3월 22일 | 회원소모임

[호남정맥과 역사] 산으로 간 사람들, 빨치산  

2010년 03월 12일 (금) 새전북신문  
  
우리나라에서 빨치산은 흔히 6·25를 전후로 지리산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공산당 유격대를 일컫는다. 빨치산의 어원은 파르티잔(partisan)으로 스페인어에서 유래하였으며, 침략군 또는 점령군에 맞서 게릴라전을 펼치는 비정규 무장군, 저항군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소위 ‘빨치산’의 효시는 194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1946년 10월 대구사건으로 남조선노동당이 탄압을 받고 불법화되면서 산으로 들어간 좌파인사들이 효시이다. 이후 1948년 8월 남한에서 단독정부가 수립되는 시점을 전후로 이념적 지향을 달리하던 남한의 남노당원을 중심으로 백두대간의 지리산과 오대산, 태백산 등지에서 조선인민유격대가 만들어지면서 빨치산의 활동이 본격화되었다. 특히, 6·25의 발발과 9·15 인천상륙작전으로 고립된 북한 인민군이 유격대와 결합하여 깊은 산으로 들어가면서 빨치산의 활동이 최고조에 달한다. 6·25를 전후로 해서 빨치산을 구빨치와 신빨치로 구분하기도 한다.

금기시 되던 빨치산에 대한 실상은 소설‘태백산맥’과‘남부군’으로 본격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이중 남부군은 소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전라북도당이 회문산으로 들어가면서부터의 생활상을 그린 실화 소설이다. 전라북도의 경우 회문산과 운장산을 중심으로 빨치산 활동을 전개했으며, 전라남도의 경우 지역별로 6개의 지구를 나누어 활동했다.

빨치산의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전라남도는 백아산의 본부를 중심으로 6개 지구 즉, 전라북도와 남도의 경계인 용추봉 가막골을 중심으로 한 노령지구, 무등산을 중심으로 한 광주지구, 국사봉과 화학산을 중심으로 한 유치지구, 조계산과 모후산을 중심으로 한 모후지구, 백운산을 중심으로 한 백운산지구, 불갑산을 중심으로 한 불갑산지구로 나뉘었으며, 6개 지구중 서쪽의 불갑산지구를 제외한 5개 지구가 호남정맥과 연관되어 있다. 전라북도 지역의 회문산도 호남정맥상의 용추봉과 연결되어 있으며, 운장산은 호남정맥에서 분기한 금남정맥상에 위치한 산이다.

남부군에 드러난 빨치산의 실태는 참으로 참혹하다. 추위와의 싸움, 배고픔, 전염병과의 싸움, 조직내의 극도의 긴장감 등 생존을 위한 사투로 사람의 생활이라고 볼 수 없는 야수의 생활에 다름없다. 생존을 위한 극도의 긴장과 고통이 여성 빨치산의 생리현상까지 멈추게 할 정도였다고 한다. 동물들도 식량이 부족하여 생존이 어려울 경우 생식기능을 조절하여 새끼 낳지 않는데 사람도 극한 상황에 처하면 같아지는 모양이다.

그런 와중에도 젊은 빨치산 사이의 사랑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한참 꿈으로 가득한 10대 후반 나이 어린 여성 빨치산의 짝사랑이야기며, 전쟁의 와중에 스치듯 지나가는 연인들의 짧은 만남과 기쁨, 그리고 재회를 기약할 수 없는 이별의 안타까움이 등이 소설을 통해 생생하다. 이러한 시대의 아픔이 불과 50∼60여년 전에 우리나라에서 있었다는 사실과 이 곳 호남정맥을 중심으로 벌어졌다는 사실이 참으로 믿겨지지 않는다.

회문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전라북도 지역의 빨치산은 국군의 빨치산에 대한 토벌작전이 거세지면서 회문산을 버리고 탈출을 하게 된다. 소설 남부군에서는 탈출과정이 워낙 경황이 없는지라 정확한 사실설명이 부족하지만, 간간이 나오는 산과 골짜기, 마을 이름을 통해 빨치산들이 호남정맥 산줄기를 따라 백두대간, 지리산으로 이동했음을 알 수 있다. 오봉산, 마이산, 탑사, 성수산, 신광사, 사근이골, 신암마을, 팔공산, 장안산, 지지계곡 등은 모두 호남정맥의 산이거나 호남정맥과 관련된 골짜기 마을, 절 등이다.

빨치산이 국군과 토벌대를 피해 비교적 안전한 깊고 높은 산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이동했으나, 당시의 인민군이나 빨치산에게도 호남정맥이나 백두대간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모양이다. 소설 어느 곳에도 호남정맥이나 백두대간이라는 용어는 나오지 않으며, 태백산맥이나 노령산맥만이 등장할 뿐이다. 빨치산도 몰랐지만 그들은 결국 노령산맥이 아닌 호남정맥을 탈출로로 이용했고, 태백산맥이 아닌 백두대간을 전전하다 지리산에서 최후를 맞았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지만, 우리에게 오랫동안 잊혀져 있었지만 우리의 삶과 역사속에서 자연스럽게 증명되는 것이 우리의 산줄기, 바로 호남정맥이다.

/한승우 전북녹색연합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