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함께 숲이 되자”
기억하자! 버드나무 숲, 우리는 나무와 함께 사는 전주를 원한다!
재작년 2월 29일은 남천교 인근의 아름드리 버드나무가 이른 새벽 기습적으로 잘려 나간 날입니다. 밑동만 남아버린 나무들의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고 항의했습니다. 잘려 나간 것은 나무만이 아니었습니다. 나무에 깃들어 살아가던 생명들, 나무들과 함께 숨 쉬어 온 전주의 시간과 추억들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공분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한 벌목은 작년 2월 덕진공원에서 반복되었고, 올해 초에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의 가지치기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 전주천과 삼천변에서 수명을 다했다고 여겨졌던 버드나무들의 딱딱한 밑동을 뚫고 초록 새싹이 돋아났습니다. 쓰러진 자리에서 기어코 다시 싹을 내고 숨쉬려 하는 나무를 다시는 잃지 않기 위해 우리는 나무가 베어진 날들을 기억하며 우범기 시장의 지난 4년 간의 벌목 행정을 규탄하고 나무를 지키기 위한 전주 시민 대행진을 하고자 합니다.
2024년 전북환경운동연합 시민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주 시민의 96.9%가 전주천 버드나무 벌목은 잘못된 집행이었다고 응답했음에도 전주시는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았으며 또 다른 곳에서 벌목을 반복했습니다.
물환경보전 조례에서 명시된 자문 규정을 무시하며 벌목이 강행되었고, 주민 감사 청구 결과 그 모든 게 독단적인 행정이었음이 명백히 밝혀졌음에도 전주시는 일방적인 불통 벌목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시민들의 외침을 철저히 외면했습니다.
잘못을 끝내 인정하지 않는 행정의 끝은 무엇입니까? 시민이 없는 곳에는 시장도 있을 수 없습니다. 전주천의 나무를 지키지 못해 덕진공원의 나무를 잃었고 이제는 건지산의 숲마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여기서 멈추지 못한다면 전주의 남은 강과 산, 들과 터를 지키기는 더 어려울 것입니다.
다가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아무리 막대기만 꽂아도 공천만 받으면 당선된다는 민주당 일색의 전주라지만 나무 한 그루도 소중히 돌보고 지키는 자부심을 그려가는 전주시에 살고 싶습니다. 기꺼이 손 잡고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우리는 오늘 다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의 행진은 쓰러진 나무들을 추모하는 기억의 걸음입니다.
우리의 행진은 그루터기에 다시 싹을 내는 나무의 곁을 지키는 약속의 걸음입니다.
우리의 행진은 산천초목 자연과 공존하여 더불어 살아가려는 다짐의 걸음입니다.
우리의 행진은 기후위기 시대의 한 그루의 생명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삶의 걸음입니다.
2월 28일, 우리는 남천교를 출발하여 한옥마을을 돌아 다시 남천교로 행진을 합니다. 나무들을 대신하여 나무가 되어주십시오. 함께 모여 숲이 되어 주십시오. 함께 목소리를 내어 그간 잘못 흘러온 전주시의 시간을 바로 잡아 주십시오.
2026년 2월 26일
2월 28일 벌목 규탄 나무 지키기 전주 시민 대행진 참가자 일동
강성희, 강윤희, 김경미, 김규영, 김누리, 김대원, 김동규, 김보경, 김상윤, 김수현, 김아람, 김예진(소만), 김재리, 김지은, 김현진, 김형우, 두해, 류후남, 린다보라, 모아름드리, 무명, 박민주, 박인숙, 박정희, 박지선, 서희, 송민영, 시리, 신현희, 심규현, 양보름, 여은정, 오은미, 유경희, 유그린, 유기만, 이진호, 임수희, 전지은, 정창남, 정현숙, 정희옥, 진경은, 최은숙, 최춘자, 하난, 한천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전북지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전북지부, 아래로부터전북노동연대, 와사비스튜디오, 익산일곱개의평화, 전북녹색당, 전북녹색연합, 전북특별자치도노동조합, 전북평화와인권연대, 전북환경운동연합, 정의당전북특별자치도당, 지향집, 진보당전북특별자치도당, 풍물패 팽수, 프리데코, 플랫폼c 전북모임
김누리 발언문
먼저 이른 시간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지켜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2024년 2월 29일, 남천교 부근의 버드나무 수십 그루가 기습적으로 이른 새벽에 잘려 나간 지 2년이 되었습니다. 그간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슬퍼 우는 이들이 있었고, 함께 외치고 분노하며 서명 운동을 했고, 주민 감사를 청구했고, 벌목 집행이 타당하지 않았다는 결과도 받아냈습니다.
또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여기에 있습니다. 누군가는 “나무 때문에 아직도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라고 묻지만, 우리는 거꾸로 묻게 됩니다. “무엇이 우리를 나무 앞에 이렇게 오래 서 있게 만들고 있습니까?” 우리는 묻고 싶고, 들어야 할 게 아직 많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날 남천교의 버드나무들에 대해서만이 아닙니다. 그 전년도에 전주천와 삼천에서 잘려 나갔던 버드나무들에 대해. 다시 작년 2월 덕진공원에서 잘려 나간 이백 여그루의 나무들에 대해. 올해에도 가로수길의 가지치기라는 이름으로 잘려 나가고 있는 수많은 나무들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나무들은 모두 도시에 있다는 이유로 삶과 죽음이라는 갈림길에 서게 되었습니다.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던 그들을, 인간이 삶과 갈림길에 서도록 만들었습니다. 도시 천변에서 자라던 나무들은 치수 사업을 위해 조치되어야 하는 대상이 되었고, 도시 공원에서 자라던 나무들은 공원의 경관을 개선하기 위해 잘리고 이식되어 떠나야 하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하루하루 가지를 뻗고 잎을 피우며 살아가던 가로수들은 길가에서 더 보기 좋은 풍경을 이루기 위해 뼈와 살을 깎이게 되었습니다.
결국, 인간이 인간의 편리와 욕망을 위해 나무의 잎을 떨구고 가지를 자르고 기둥과 뿌리를 뽑았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단 몇십 년을 위해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을 살아온 나무들의 세월을 파괴합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일생이 나무 한 그루의 삶에 들어갈 만큼, 나무는 오래 삽니다. 그런데도 아이였던 사람이 어른이 되고 어른이 다시 노인이 되어 잘 살아가기를 꿈꾸는 이 도시에서, 나이든 나무는 늙고 병들었다는 이유로 도시에서 밀려납니다. 지난 4년간의 벌목을 지켜보며 저는 이 설명되지 않는 모순을 설명받고 싶었습니다.
저는 묻고 싶습니다. 어째서 나무 한 그루의 죽음이 한 생명의 목숨으로 불리고 세어지지 않습니까. 함께 살자고 말하는 도시 공동체에 왜 나무의 자리는 없습니까. 정작 나무는 혼자 살아가지 않습니다. 버드나무들은 땅속에 깊이 얽힌 뿌리로 물과 영양을 나누며 지냅니다. 그렇게 서로를 붙들며 함께 물길을 버텨냅니다. 나무들이 잘려 나갔을 때, 남은 나무들은 사라진 이들의 고통을 느꼈을 것입니다. 벌목이 불러일으키는 고통 앞에서 나무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그 고통을 느끼지 못한 채 따라 침묵한 것은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또한, 그럼에도 잘려 나간 버드나무들의 그루터기에서 새싹이 돋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땅속에 이어져 있는 뿌리들이 기어코 다시 살아보자고 밀어 올린 싹이라는 믿음이 그려졌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의 마음도 그와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자 다른 이유로 서로 다른 자리에서, 그러나 나무를 살피고 돌보고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뿌리처럼 내린 이곳에 함께 모여 질문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오래 서 있는 걸까요.
전주시에게 다시금 묻습니다. 2024년 2월 29일 새벽, 전주시는 그것이 명백한 잘못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왜 시민들의 동의와 절차 없이 버드나무들을 훔치듯 잘라냈나요? 반대를 무릅쓰고 절차를 어기면서까지 그렇게 무모한 방식으로 나무를 베야만 했던 진짜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어째서 매번 사과 없이 침묵하고 강행하는 벌목을 반복하나요?
그간 다 같이 살아가는 전주를 외치던 당신은 정작 나무를 나무로 보았던가요? 당신이 말하는 도시 행정의 언어 속에서 나무는 녹지가 되고, 관리할 시설이 되고, 수명을 계산하고, 위험도를 측정하고, 예산을 배정하는 대상이 되겠지요. 그 언어 안에서는 낡은 나무를 베고 새 나무를 심는 것이 그저 교체이고 정비이겠지요. 나무 한 그루가 사라져도 아무것도 잃어버린 것이 없게 되겠지요.
하지만 당부드립니다. 시장의 자리가 아닌, 삶의 자리에서 함께 마주봐주십시오. 나무는 당신처럼 이 삶을 살아내는 시간입니다. 수십 년, 수백수천 년의 계절을 지나는 시간입니다. 나무는 관계입니다. 나무를 지나다니는 이들과, 그 나무에 깃든 생명들과 맺어온 관계입니다. 나무는 기억입니다. 쓰러지기 전의 나무를 기억하는 이들이 살아 있는 한, 나무는 앞으로도 우리의 추억을 함께 나누게 될 이웃입니다.
도시 행정의 언어가 담지 않고자 하는 그 삶의 언어 앞에서 우리는 끝까지 함께 살아가고자 물을 것입니다. 당신의 임기 동안 전주가 나무를 살리는 도시가 아닌 나무를 자르는 도시로 이름을 남겼다는 사실을 당신의 오명으로 기억하며,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미래를 앞당겨올 것입니다.
당신이 당신의 방법대로 전주시를 포기하지 않았듯, 우리도 우리의 마음을 담아 전주시를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전주시의 나무들을, 전주시에서 나무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쓰러진 자리에서 다시 싹을 내는 나무와 손을 잡고, 전주가 다시 나무를 살리는 도시가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바로서겠습니다. 오늘의 걸음을, 우리의 뿌리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전주 곳곳에 알리는 걸음들로 이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