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의 목소리” 전북시민 릴레이 낭독 19회

2021년 5월 19일 | 메인-공지, 활동, 활동소식

?”체르노빌의 목소리” 전북시민 릴레이 낭독 19회입니다.

 

19회 낭독에서는 방사선에 오염된 구역을 촬영했던 카메라 감독의 이야기를 전주 MBC 카메라 감독인 진성민 님의 목소리로 들려줍니다. 카메라 감독은 방사선 오염 속에서 사람처럼 대피할 수 없었던 동물들과 연결되는 경험을 합니다. 감독의 카메라는 그들의 눈이 되었습니다.

 

* 낭독 듣기 → https://youtu.be/YOjMPoc_gfY

 

 

많은 분들이 들으실 수 있도록 널리널리 공유 부탁드립니다!!

 

 

[19회 밑줄 긋기]

 

– 아무도 아무것도 몰랐다. 그게 가장 무서운 일이었다. 방사선 측정기가 어떤 수치를 보여주면, 신문에는 완벽히 다른 이야기가 실렸다.

 

– 구원은 유머에서 찾는다.

 

– 이번에도 보니 사람들이 일하고 있었고, 과수원에 꽃이 폈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데, 뭔가 이상했다. 이유가 뭔지 몰랐다. 노출도 정상이었고 그림도 예뻤는데, 뭔가 이상했다. 그러나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냄새가 안 났다. 과수원에 꽃이 피는데, 냄새가 없었다! 고준위 방사선이 생체에 작용해 특정 기관만 정지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 일행에게도 물어봤다. “사과나무 냄새가 어때?” 셋이 함께 왔는데, 아무도 아무런 냄새가 안 난다고 했다. 우리한테 뭔가 일어났다. 라일락 향기도 안 났다. 라일락이! 그러자, 내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가짜 같았다. 세트장에 있는 느낌이었다. 내 의식이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는 참조할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설명서가 없었다!

 

– 호이니크 시내에 표창자 명단이 걸려 있었다. 그 지역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들의 명단. 하지만 오염된 구역에 들어가 유치원에 있던 아이들을 데려온 사람은 표창자가 아니라 술주정뱅이 운전기사였다. 모두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냈다.

 

– 포로수용소에서 살았던 사람들을 촬영한 적이 있다. 보통 그들은 만나기를 꺼린다. 다 같이 모여 전쟁을 회상하는 게 부자연스러웠다. 서로 죽이고 죽은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모욕을 배우고, 겪으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서로에게서 도망 다닌다. 자신에게서 도망친다. 사람에 대해 알게 된 것으로부터 도망친다. 사람 속에, 살갗 아래에 뭐가 있는지······.

 

– 악의 메카니즘은 세상이 파멸해도 돌아갈 것이다. 내가 알게 된 사실이다. 지금과 똑같이 서로 헐뜯고, 상사 앞에서 아부하고, 집에 있는 텔레비전과 모피 코트를 지켜낼 것이다.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사람은 지금과 똑같을 것이다. 영원히······.

 

– 한번은 아이들한테 체르노빌 영상을 보여주었다. 사람들이 말렸다. “왜 보여주려고? 안 돼. 그럴 필요 없어. 안 그래도 피가 변했다던가 면역체계가 고장 났다는 별 얘기 다 들어서 겁에 질려 사는데······.” 다섯, 열 명이라도 와서 봐주길 바랐다. 그런데 방이 꽉 찼다. 보고 난 후 아이들이 여러 가지 질문을 했지만 그중에 내 머리에 박힌 게 있다. 원래는 조용하고 말 없을 것 같은 남자아이가 새빨개진 얼굴로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왜 거기 남은 동물들을 도와주면 안 됐어요?”

그러게, 왜? 나도 생각 못 해본 거였다. 그래서 대답도 못 했다. 우리가 하는 예술은 사람의 고통과 사랑에 대한 것이지, 모든 생물을 취급하지는 않는다. 사람만! 다른 세계, 동물, 식물에게까지 몸을 낮추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은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지 않은가. 다 죽일 수 있다.

 

– 그런데 나는, 나는 거기서 이상한 일을 겪었다. 동물을, 나무를, 새를 보는 내 눈이 달라졌다. 지금까지 구역에 여러 번 갔다. 버려지고 파괴된 집에서 야생 멧돼지가 뛰쳐나왔다. 큰사슴이 나왔다. 이런 장면을 찍었다. 그런 걸 찾아다녔다. 새 영화를 찍고 싶다. 그리고 모든 것을 동물의 눈으로 보고 싶다. “뭐를 찍겠다는 거야?” 나한테 묻는다. “주변을 둘러봐. 체첸에는 전쟁이 한창이야.” 그런데 성 프란치스코는 새들에게 설교했다. 마치 사람과 얘기하듯 새들과 대화했다. 새들은 그와 새의 언어로 이야기했다. 그는 자신을 낮춰, 그들의 비밀스런 말을 이해했다.

 

* 세르게이 구린 (카메라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