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과 문화] 소설 ‘태백산맥’

2010년 10월 15일 | 회원소모임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

[img|새만금 130.jpg|600|소설’태백산맥’의 무대인 낙안읍들과 멀리 벌교가 보인다|0|1]
소설 태백산맥의 주요 무대는 언뜻 태백산맥과는 무관한 듯한 벌교이다. 또한, 벌교를 중심으로 보성과 순천, 조계산, 지리산을 무대로 한 이야기가 소설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소설 태백산맥은 객관적이고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고, 이념적인 이유로 금기시 되었던 1945년 해방부터 한국전쟁 시기까지를 다루어 특히 관심을 끌었다. 더욱이 벌교출신의 빨치산과 민족주의자들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펼쳐 보수단체으로부터 협박과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며 고소를 당하기도 하였다.

소설 태백산맥은 민감한 시기를 다룬 것과 더불어 당시의 사회모순과 생활상을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어 사실감 있게 묘사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격동의 현대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운 역사서이기도 하다. 소설은 8.15해방, 건국준비위원회, 미군정, 제주4.3사건, 단독정부수립, 여순사건,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시기에 친일반민족자와 민족주의자, 지주와 소작농, 빨치산과 토벌대 등의 대립과 민중들의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빨치산 청년(정하섭)과 무녀(소화)의 순수한 사랑, 지식인들의 고뇌, 정치권력과 돈은 가진자의 음모와 탐욕, 무차별한 학살과 비인간적인 폭력 등 전쟁과 광기의 시대를 전라도 걸쭉한 사투리를 통해 사람냄새나게 이야기를 펼친다. 1986년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첫 출간된 소설은 현재까지 무려 700만권 이상이 팔린 스테디셀러로 과거와 현 세대들에게 꾸준히 읽히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남도의 끝 벌교를 주무대로 하는 소설의 제목이 왜 하필 태백산맥일까? 소설 1권의 구절을 통해 작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김범우는 홍교를 건너다가 중간쯤에서 멈추어섰다… 무수한 산줄기들은 모두 북으로 북으로 치달아가고 있었다. 조계산 줄기는 무등산 줄기와 손을 맞잡으며 섬진강에 이르고, 그 지맥은 섬진강을 뛰어넘어 지리산으로 이어졌다. 산속에 산을 품은 지리산의 준령들은 북으로 치달아 오르다가 덕유산을 만나고, 덕유산은 가쁜숨을 몰아 추풍령에 다다라선 속리산으로 건너뛰는 것이다. 그 줄기가 소백산에 이르러, 원줄기인 태백산맥이 거느린 네 개의 실한 가지중에서 최남단으로 뻗어내린 소백산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낙안벌을 보듬듯이 하고 있는 징광산과 금산은 태백산맥이라는 거대한 나무의 맨 끝가지에 붙어 있는 하나씩의 잎사귀인 셈이었다.”

즉, 조정래 작가는 금강산으로부터 시작되는 태백산맥 줄기를 따라 남한의 산줄기들이 네 개의 가지를 치며 갈라지고, 태백산맥의 마지막 가지인 소백산맥을 따라 남도의 끝 벌교까지 산줄기가 이어져 있어 벌교가 우리나라의 일부임을 강조하고자 했다. 또한, 바로 이 태백산맥과 소백산맥 산줄기를 무대로 벌어지는 빨치산들의 활동을 소설의 중심으로 삼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작가가 산줄기를 나무와 비교하여 가지와 나뭇잎으로 비유한 것은 정확하다. 그러나, 조계산이 북으로 북으로 이어져 지리산으로 향하는 것은 아니며, 또한 지리산까지 나무가치처럼 이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실은 조계산을 넘어서면 산줄기는 동으로 동으로 이어지고, 그 끝에서 백운산이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지리산과 맞닿아 있다. 정확히 말하면 벌교의 징광산(존제산)은 호남정맥의 한 봉우리이고 호남정맥을 따라 고동산, 조계산, 유치산, 바랑산, 백운산이 이어지며, 섬진강에서 그 끝을 맺는다. 따라서, 조계산의 지맥이 섬진강을 뛰어 넘어 지리산으로 이어졌다는 것은 작가적 상상력이라고 할 수 있다.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을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태백산맥은 주로 남한에 위치한 남한의 중심산줄기이다. 또한 분단의 상징이기도 하다. 필자도 학창시절 지리시간에 배웠던 산맥도에서 남한의 산맥은 북한의 산맥과 이어져 있지 않고 38선을 부근으로 단절되어 있어 남북분단의 필연적 당위성을 주입받았던 기억이 있다. 조정래작가도 백두대간이나 산경도를 배우지 못했으며, 일제시대 이후 만들어진 산맥도를 배웠다. 그리고 실체가 불분명한 산맥도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소설에서도 실체가 불분명하게 산이 강을 뛰어넘는 것이다.

태백산맥은 일제와 분단조국의 아픔을 상징하는 산맥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백두대간은 우리 고유의 산줄기이자 통일조국을 상징하는 산줄기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소설‘태백산맥’역시 하나의 역사로 간직할 수밖에 없다.

/한승우 전북녹색연합 사무국장